네 번의 산업혁명, 그리고 패러다임의 변화
톱니바퀴 사이에 낀 사람이 나오는 장면. 이 한 문장이면 누구나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Modern Times, 1936)》 를 떠올린다. 이 기괴한 장면이 나오는 영화의 배경은 바로 포디즘 Fordism. 포디즘은 1913년 헨리 포드가 자신의 포드 Ford 공장에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적용하여 ‘모델T(Model T)’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제작 단가를 낮추면서, 자본주의의 혁신을 이루고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가능하게 한 일종의 ‘자본가 통제 강화 체제’라고 할 수 있겠다.
포디즘은 제2차 산업혁명 시기의 현상으로, 인류는 네 번의 산업혁명을 거쳐 왔다. 18세기, 증기기관 기반의 기계화 혁명(제1차 산업혁명), 19~20세기 초, 전기 에너지 기반의 대량 생산 혁명(제2차 산업혁명), 그리고 20세기 후반,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지식정보 혁명(제3차 산업혁명). 이후 21세기 초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지식정보 혁명에 초연결•초지능화가 더해진 ‘제4차 산업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네 번의 산업혁명을 거치며 수많은 변화 속에서 기업은 산업화, 자동화, 지능화를 실현했으나, ‘대량 생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관리 기법’ 만은 변치 않고 산업혁명을 관통하고 있다. 사람, 장소, 상품 등 시장(Market)을 구성하는 것들이 모두 변했고, *마케팅(Marketing)의 정의와 역할마저 바뀌었는데도 말이다.
*마케팅 정의의 변화 (미국마케팅협회, American Marketing Association, AMA)
(2013) the activity, set of institutions, and processes for creating, communicating,
delivering, and exchanging offerings that have value for customers, clients, partners, and society at large.
(2004) an organizational function and a set of processes for creating, communicating and delivering value to customers and for managing customer relationships in ways that benefit the organization and its stakeholders.
(1985) the process of planning and executing the conception, pricing, promotion, and distribution of ideas, goods, and services to create exchanges that satisfy individual and organizational objectives.
(1937) business activities involved in the flow of goods and services from production to consumption.
초기의 마케팅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니 당연히 생산 지향적이자 판매 지향적이었다. 이후 생산자가 많아져 경쟁이 심화되자 마케팅은 고객 만족을 꾀하는 고객 지향적으로, 그리고 고객•경쟁•유통 등 통합 관리를 하는 시장 지향적 마케팅으로 변해 갔고, 최근엔 윤리•도덕•환경 등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기 위한 사회 지향적 마케팅이 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시장의 패러다임 자체의 변화로 사실상 우리는 끊임없이 혁신을 강요받고 있다.
혁신을 외칠수록 혁신이 안 되는 역설
그런데 대개 우리나라의 경우, 혁신은 성공을 보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우리는 ‘혁신’의 사례를 국내보다는 해외, 내부보다는 외부에서 찾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수의 글로벌 기업은 대부분 기업의 창업자(혹은 오우너)가 사업 분야나 제품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나 인사이트를 중심으로 혁신의 선봉에 서서 비즈니스를 리드하는데, 우리의 기업 환경은 다소 다르다. 그래서, 경영진의 강력한 지휘 하에 진행되지 않는 혁신은 종종 추진력을 잃어버리게 마련이다.
두 번째는, 첫 번째와 반대라고 할 수 있다. 혁신은 본질적으로 많은 장애물을 담고 있는데, 경영진의 강력한 의지로 장기간 혁신을 밀어붙이면 실무자는 ‘혁신 피로감(Innovation fatigue)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이 아닌 조직에서도 나타난다. 주구장창 혁신을 이야기하면서, 마치 혁신을 하고 있다는 착각 내지는 위안을 하며 스스로 혁신에 대한 ‘인지부조화’를 극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혁신의 절박함 없는 타협도 이유가 된다. 아마 혁신 과제를 수행해 봤다면 알 것이다. 일반적으로 혁신은 성과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보여주기가 가능한 과제를 선정할 수밖에 없고, 그 성과도 사실 직원을 통제하고 생산성(혹은 매출)을 높이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적정 수준에서 혁신을 수행을 하게 된다. 너무 높은 퍼포먼스는 다음 평가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 방해 요인은 아래와 같다.
첫째, 숙련된 전문 인력의 정체 문제이다. 4차 산업혁명이 논의된 지 충분한 시간이 흐르진 않았지만, 그동안의 전문 인력들이 4차 산업 쪽으로 이동하지 않았으며, 4차 산업에 대한 전문 역량을 갖추지도 못한 부분이 있다.
둘째, 혁신의 실패에 따른 기회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려는 문제가 있다. 혁신 과정에서 온갖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데, 4차 산업 관련 시행착오는 대부분 처음이라 어떤 위험이 발생할지, 그 위험에 적응할 수 있을지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 위험이 사람의 안전과 관련된 것이라면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쉽게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
셋째, 고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로봇이나 AI가 인간 대신 일을 하면서 인간은 일자리를 잃어버린다는 두려움이 팽배해 있다. 혁신을 통해 제 손발을 묶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을 아무도 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혁신을 외칠수록 혁신이 안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최근 더욱 많이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다시 혁신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은 이전의 산업혁명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그동안의 생산성이 성장과 분배에 대한 문제였다만, 지금의 생산성은 파괴와 생존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혁신의 역설’ 운운하며, 과거의 구태의연한 방식을 고집한다면,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구태의연한 혁신을 혁신하라
그러면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가? 혁신이라는 단어에 집중하면 실마리가 나오지 않을까?
보통 혁신이라고 하면, 과거와의 단절, 과거에의 부정, 그리고 과거와는 다른 방식을 생각하곤 한다. 무언가 다르게 한다는 것을 혁신의 방법론으로 잘 못 알고 있는 것이다. 혁신은 가죽(革)을 새롭게(新) 한다는 의미이고, 혁(革)은 ‘가죽의 털을 다듬어 없애고 무두질하여 새롭게 만든 가죽’이라는 의미로 단어 자체에 ‘새롭다’, ‘고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해법을 가져오는 것보다, 문제를 정확히 정의할 수 있도록 현재를 ‘무두질’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한, 혁신을 의미하는 innovation은 ‘안으로’라는 의미의 ‘in’과 ‘새로운’이라는 의미의 ‘nov’가 합쳐져 ‘안으로 새롭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무분별한 경영컨설팅과 벤치마킹으로 어설프게 남을 흉내 내거나 잘 맞지 않는 인수합병으로 외형을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기에 앞서, 내부에서 시작하고 내부부터 개선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뻔한 말이지만, 일하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의 생각과 일하는 사람들의 관계들, 그리고 일하는 목표와 방식을 바꾸는 것이 혁신의 시작이어야 한다. 조직의 관성은 생각보다 잘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고 보다 지능적인 사회로 진화(다보스 포럼, 2016)’ 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기에, 구태의연한 혁신에 대한 생각을 혁신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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