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 그리고 기업의 변신
2007년 개봉 이후 시리즈마다 역대급 흥행 성적을 내는 영화가 있다. 변신 로봇 이야기를 다룬 《트랜스포머 Transformers》. 흥행 요인은 마이클 베이 Michael Bay와 스티븐 스필버그 Steven Spielberg라는 이름값도 있지만 현란한 영상에 액션, 그리고 적절한 멜로까지 흥행을 위한 요소가 골고루 갖추어져 있기 때문.
거기에 “상황에 맞게 변신을 하며 난관을 헤쳐나가는 로봇의 모습에서 현실의 한계를 넘고 싶은 심리가 투영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면 지나친 해석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4차 산업혁명의 거센 파도 위에 스스로를 ‘변신 Transformation’해야 하는 우리의 마음이 반영되어 앞으로도 흥행은 무난하지 않을까 점쳐본다.
흥행 이야기는 그만하고, 트랜스포머로 돌아와 보자. 우리는 로봇들이 변신하는 모습에서 중요한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목숨 걸고 싸워야 하니 ‘빠르게’ 변신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구를 지킨다’는 것에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 즉, 변신을 할 때는 어떤 상황과 목적, 형태, 방식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변신에는 ‘방향성’과 ‘속도’가 있다는 것이다. 상황에 맞게 목적이 생기고, 그 목적에 맞게 형태와 방식이 정해지는 일련의 과정을 방향성이라고 한다면, 변신에 있어 속도 보다 방향성에 더 중요한 가치를 두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러한 개념은 기업 경영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시장 상황에 따라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기업의 숙명이지만, 그때마다 기업은 방향성을 바꾸진 않는다. 웬만하면, 완급 조절을 하며 적절하게 대응하고, 어느 범위를 넘어 ‘변신’을 해야 할 시점에 방향을 고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보다 진지한 ‘전략적 의사결정’의 과정이 필요하며, 일하는 방식과 형태를 바꿔야 하며, 무엇보다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수의 기업은 시장을 만들고 이끌어가며 스스로 변신하는 마켓 리더십을 발휘하기보다는, 리더의 뒤에서, 리더를 따라 하는 안전하고 손쉬운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앞에 서 있는 멘붕의 기업들
어쨌든 이러한 방식은 그동안 우리가 성장하는 데 있어 매우 효율적이었다. 게다가 안정적인 매출과 서비스를 담보해 주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이 변신해야 하는 지금, 그것은 독이 되고 있다. 특히 다수의 한국기업들에 말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동안 퍼스트 무버 First-Mover전략이 아닌 패스트 팔로워 Fast-Follower전략을 채택하여 성장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패스트 팔로워는 비즈니스 모델이나 제품•서비스 혁신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운영 등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 원가경쟁력과 생산성을 향상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리더가 만들어 놓은 성공의 방정식을 따라 ‘농업적 근면성’만 있으면 ‘대박’은 아니라도 ‘중박’은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전략적 의사결정을 통해 독자적인 방향성을 만들고 스스로 변신하는 법은 터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경계도 없고 예측하기도 어려운’ 엄청난 변화의 시대에 우리의 기업들이 ‘멘붕’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팔로우’ 할 리더가 없기 때문이다.
멘붕 상태가 된 원인을 살펴보면, 크게 2가지로 요약을 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기존의 성공방정식 붕괴와 이노베이션의 실패다. 오랜 기간 사업의 성공 공식은 단순했다. 매출 증가는 현금 흐름을 늘리고, 현금은 성장을 만들어 냈다. 결국, 이것은 궁극적인 하나의 목적, 즉 '규모와 수익성의 증가'를 위함이었는데, 호황에는 생산성을 기반으로 한 성장의 선순환이 가능했으나 지금과 같이 생산성 제로의 시대에는 이 방정식이 작동하지 않는다.(시쳇말로 “좋은 제품 싸게 만들어서 많이 팔면 된다”는 식의 경영 논리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CEO와 주주는 낡은 시스템 대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이노베이션을 주문하지만, 조직의 오랜 관성은 번번이 실패를 가져왔다.
두 번째는 최근 화두로 떠오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Digital Transformation개념의 실현 문제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디지털 기술 및 성과를 향상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하여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World Economic Forum)’이다. 즉, 이것은 사업전략, R&D, 생산, 영업 등 사업 전체 프로세스에 대한 것이며, 프로세스, 소프트웨어, 장비, 운영 기술 등 산업 현장의 데이터들이 효율성과 생산성을 위해 연결되어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개념을 실현하려면 디지털의 특성을 이해하고 적용해야 하는데, 산업회사는 ‘디지털 DNA’가 없어 그게 잘 안 된다는 것이다. 디지털은 혼자 할 수 없으므로, 외부 파트너들과의 협력과 자산(정보와 상호작용)의 공유 및 가치가 높은 교환을 이루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관건인데, 이것을 외부와의 공유와 협력의 문제가 아닌 내부의 이노베이션 문제로, 인재•조직문화•도메인 지식의 공개 및 참여의 문제가 아닌 IT기술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멘붕을 극복하는 첫 단추, 미션과 비전
포레스터 리서치 Forrester Research는 '2020년까지 모든 기업은 '디지털 약탈자 Digital Predator' 또는 '디지털 희생양 Digital Prey' 중 하나의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남은 기간 동안 기업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멘붕 상태에서 ‘노력’을 한들 어떤 성과가 나겠는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변화에 대한 강박관념이 두려움을 전염병처럼 퍼트리고, 기업들은 몸에 맞지도 않는 선진 사례나 디지털 기업들을 검증도 하지 않고 무작정 따르려 하고 있다. 이는 마치 우두머리를 따라 맹목적으로 달려 절벽 아래로 집단자살을 하는 레밍 Lemming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력을 하기에 앞서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이것은 기업변신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기업변신의 첫 단추는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으로, 미션 Mission과 비전 Vision을 수립함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 필립 코틀러 Philip Kotler는 미션은 기업의 존재 이유를 의미하며 비전은 미션을 추구하기 위해 조직이 도달해야 할 미래상으로, 미션과 비전은 기업 내 모든 종사자가 공유해야 하는 가치체계라고 하였다. 즉, 미션은 홈페이지 회사소개에 적기 위해, 비전은 선포식을 위해 적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업의 본질을 정의하는 것으로 멘붕에 빠진 기업들에 변신의 방향성을 제공한다. 그런데도 기업들의 미션과 비전을 보면 고객 만족, 도전, 소통, 행복, 최고, 가치 등 모호한 단어들을 열거하며 자신들의 방향을 정하길 회피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미션과 비전은 전략 그 자체이다. 중요한 것은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럴싸할 필요는 없다. 할리데이비슨 Harley Davidson의 방향을 보라. 그들의 목표는 좋은 오토바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각 개인의 자유에 대한 꿈을 실현한다. We fulfill dreams of personal freedom”라며 이상을 이야기할 뿐이다. 단순 명료한 방향성,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도구(오토바이와 관련된 것)만 제공한다. 그러면, 고객들은 H.O.G(Harley Owners Group)를 통해 꿈을 나누는 관계를 맺고 스스로 브랜드 전도사 evangelist가 되어 미션과 비전을 실현해 준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다양한 키워드와 사례들이 도그마(dogma, 교조주의)가 되어 자신의 방향성을 잃고 돌이킬 수 없는 멘붕에 빠지지 않으려면, 전략 수립에 앞서 꿈과 바램을 담은 자신만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쓰길 바란다.
비전은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실현하는 것이다
“사업은 재미있어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오래 할 수 있고, 오래 할 수 있으면 잘 할 수 있다”라는 이상한 회사가 있다. 그 회사의 수장은 선천성 난독증(難讀症)에 시달려 고교를 중퇴한 평범 이하의 소년이었다. 현재 60세 중반이 넘은 그는, 항공•철도•영화관•음반매장•호텔•휴대폰•복권•화장품•콜라•피임기구•금융•피트니스센터 등에서 민간 우주여행사까지 끝없는 사업 확장으로 전 세계에 400여 개의 계열사와 5만 명이 넘는 직원을 둔 영국 최고의 기업가가 되었다. 그는 괴짜 경영자의 대명사인 버진 그룹 Virgin Group의 창업자, 리차드 브랜슨 Richard Branson이다.
버진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비즈니스 포트폴리오 관점에서도, 브랜드 확장 관점에서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교과서에서는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는 핵심역량을 기반으로, 브랜드는 브랜드 자산과 속성을 기반으로 확장을 하라고 하는데, 콘돔에서 우주 사업까지 라니. 도대체 일관성이 없고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무차별적으로 보이는 그의 사업확장에는 중요한 원칙이 있다. 바로 ‘펀 Fun’이다. 버진의 펀은 즐거움과 유머이다. 버진은 이질적인 사업에서 동일한 브랜드명과 정체성을 활용해 고객에게 펀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할리데이비슨의 고객들이 그러하듯이 버진의 고객들은 버진의 ‘펀’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안에서 즐거움이라는 가치를 소비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개인이든 조직이든 ‘변신 Transformation’ 의 순간에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라” 혹은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 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하지만, 실상은 변신하기 위한 전략에서도 가장 중요한 꿈 dream을 빼고, 머리로만 계산하고 조급하게 속도만 이야기한다. 비전은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실현하는 것인데 말이다.
그러므로 “오직, 재미를 위해 도전한다”는 연간 매출액 25조 원의 그룹을 이끄는 철없는 수장-리차드 브랜슨의 비전에 대한 말을 되뇌어 볼 필요가 있다. "사실상, '비전이 있다'라는 말은 어떤 사람이 스스로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내면 붙게 되는 타이틀이다." 끝.
#4차산업혁명 #혁신 #이노베이션 #인공지능 #리노베이션 #기업 #경영 #전략 #경쟁 #조직 #리더십 #용기 #실패 #철학 #창조적파괴 #디스럽터 #disruptor #creative #smart #영감 #inspiration #정호훈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저는 관점 perspective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관점의 글들이 브런치에 있습니다.
"작가의 부족함을 메꾸는 것은 오직 독자의 피드백뿐이다."
[기업 컨설팅 및 강의 문의]
'Job Nomad > Columnist'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6] 4차 산업혁명과 벤치마킹 (0) | 2021.06.15 |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5]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성장의 의미 (0) | 2021.06.14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4] 4차 산업혁명, 경계 없는 시대의 경쟁 포지셔닝 (0) | 2021.06.14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2] 4차 산업혁명과 이노베이션 지상주의 (0) | 2021.05.03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1] 혁신에 대한 생각을 혁신하라! (0) | 2021.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