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그리고 일하는 방식의 변화
대한민국 상법 169조에 의하면, ‘회사’란 ‘상행위나 그 밖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여 설립한 법인’으로 사단(社團)성, 법인성, 영리성 3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회사는 동일한 목적으로 구성된 단체여야 하며, 사람처럼 법으로 권리와 능력을 부여한 단체여야 하며, 이익을 내고 그 이익을 사원들에게 배분하는 단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회사란 이익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여러 사람이 함께 일을 하니 자연스레 일의 순서(프로세스)와 권한(의사결정) 즉, 일하는 방식을 만들게 마련이다.
18세기 후반 1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회사는 일하는 방식을 더 촘촘하게 만들고 관리해왔다. 100여 년 역사의 컨설팅사 맥킨지 McKinsey는 조직이란 다음의 7가지 요소들로 구성되며, 이것이 균형 있게 관리되어야 한다며 '7S 모형'을 제시하였었다. ‘7S’란, 조직의 행동 원리와 사고방식을 이르는 ‘공유가치(Shared value)’, 사업의 장기 계획과 자원배분을 의미하는 ‘전략(Strategy)’, R&R에 대한 ‘조직구조(Structure)’, 의사결정과 운영의 틀인 ‘제도(System)’, 인재육성에 대한 ‘구성원(Staff)’, 기업의 역량인 ‘관리기술(Skill)’, 그리고 리더십과 프로세스의 ‘경영방식(Style)’을 뜻한다.
이렇듯 일하는 방식은 200년이 넘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었는데, 더불어 맥킨지의 ‘7S 모형’과 같은 관리기법도 발전해 왔다. ‘효율성’과 ‘생산성’에 대하여 조직은 항상 ‘우상향’을 원했고,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보다 나은 성과를 위한 관리 자체가 일이고 이것을 잘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관리하는 일’ 자체에 집중한 나머지 시장과 고객을 위한 ‘진짜 일’을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는 경우마저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 20세기 후반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3차 산업이 도래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상법’ 기준으로 회사가 아닌 회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영리성 외의 사회적 역할이 강조된 회사도 생기고, 1인 회사와 같이 법인성과 사단성의 개념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회사의 형태도 나타났다는 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생산방식의 변화는 조직의 프로세스와 의사결정 방식을 바꾸고 회사라는 개념마저 바꿔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데이터 기반의 4차 산업혁명이 또 한 번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파이프라인에서 플랫폼 비즈니스로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 2차는 전기•내연기관, 3차는 컴퓨터•인터넷이 변화의 기반이다. 이 기간에 산업을 지배한 ‘파이프라인 pipeline’ 비즈니스는 일직선상의 일련의 활동들을 통제함으로써 가치를 창출하는 가치사슬 value chain모델이라 할 수 있다. 초연결•초지능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플랫폼 platform 비즈니스가 산업을 지배한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파이프라인 비즈니스와 달리 ‘생산자와 소비자를 한데 모아 가치가 높은 교환이 이뤄지도록’ 한다.
3차 산업혁명을 거치며 시장과 소비자가 ‘디지털화’ 되면서, 이 기간 동안 많은 기업들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digital transformation을 진행하였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본격화되어, 이제 많은 기업들이 파이프라인 비즈니스를 고수하는 대신 플랫폼 비즈니스와 결합하던지 아예 플랫폼 비즈니스만을 추진하기도 하는 상황이다. 애플 Apple은 데스크톱과 단말기를 생산하는 본질적으로 파이프라인 비즈니스지만 앱스토어라는 마켓플레이스와 결합하여 플랫폼이 되었고, 아마존 Amazon과 알리바바 alibaba는 기존의 물류, 매장관리, 결제, 배송 등의 가치사슬과는 다른 방법으로 운영되는 무인 마트 ‘아마존고 Amazon Go’와 ‘타오 카페 Tao Cafe’를 선보인 것처럼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파이프라인상의 가치 극대화’라는 개념은 중요하지만 기업이 점점 플랫폼 비즈니스화 하는 이유는, 플랫폼 비즈니스에서는 정보와 상호작용이 ‘가치’ 그 자체면서 ‘경쟁우위’이며, 그것은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더욱 강화되기 때문이다. 즉, 파이프라인 비즈니스보다 더 경제적으로 시장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1위 숙박 플랫폼 에어비엔비 AirBnB가 힐튼 Hilton 그룹보다 더 경제적으로 비즈니스 하고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는가?
이렇게 파이프라인에서 플랫폼으로 변하는 과정에는 핵심적 변화가 발생한다(2016, HBR). ‘자원 통제에서 자원 조정으로’, ‘내부 최적화에서 외부 상호작용으로’, 그리고 ‘고객 가치 중심에서 생태계 가치 중심으로’가 그것이다. 유•무형자산 보다 생산자와 소비자로 엮인 네트워크가 더 중요한 자산으로 되며, Input과 output 사이의 활동을 최적화하여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자원을 조직하는 것에서 외부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다양한 작용을 촉진하는 것으로 활동이 바뀌며, 일방향 프로세스를 통해 최종 소비자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순환적이고 반복적인 피드백을 통해 생태계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즈니스 개념의 변화는 비즈니스 구조를 변화시킨다. 이미 우버 Uber나 에어비앤비 AirBnB 등과 같이 소비자와 생산자가 네트워크에 항시 연결되어 적시수요 On-Demand를 충족시켜주는 회사가 더 많아지고 있으며, 극단적이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인간의 개입이 최소화된 자율기업(DAC: Decentralized Autonomous Corporation)과 같은 작고 탄력적인 회사(혹은 조직)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 비즈니스와 같은 새로운 구조의 회사들은 기존의 일하는 방식으로는 작동하기 어렵다. 하여, 전통적인 관료제 bureaucracy의 대안으로 유연성과 자율성, 그리고 창의성을 제고할 수 있는 자율관리 self-management시스템으로 홀라크라시 Holacracy와 같은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권한 집중과 계급구조, 폐쇄성과 동기 결여 등 전통적인 관료제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물리적인 구조가 아니라 의사소통•결정 구조의 변화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휴리스틱이냐? 알고리즘이냐?
"4차 산업혁명은 우리가 하는 일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우리 자체를 변화시킵니다. 기술적으론 말할 것도 없고 물리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도 말이죠"라는 클라우스 슈밥 Klaus Schwab(세계경제포럼 창시자 겸 의장)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생산 방식이 변하면 소통방식이 변하고, 조직의 일하는 방식이란 곧 의사결정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의사결정’이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의사결정 자체가 전략이고 생존으로 자칫 한 번의 그릇된 의사결정이 조직을 데스밸리 death valley(스타트업이 창업 3년 즈음하여, 그 무렵에 자기자금, 엔젤 자금이 고갈되어 문을 닫게 되는 시점)에 빠트릴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사결정을 누가 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2차 산업혁명 때까지는 전형적인 파이프라인 비즈니스 시대였다. 조직은 관료제로 움직였으므로, 조직의 의사결정은 경험과 경력이 많은 관리자가 하였다. 사회는 적당히 빨랐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으므로, 나이를 먹으면서 ‘헛짬밥’이 아니면 조직에서 지위를 획득하고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의사결정 방식을 휴리스틱 heuristic이라고 한다.
휴리스틱이란 ‘찾아내다’, ‘발견하다’는 뜻의 그리스어 heutiskein에서 나온 말로, 경험을 통해 얻어내는 최적의 해답을 의미한다. 즉, 불확실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가능한 한 빨리 풀기 위해 경험법칙(a rule of thumb), 경험에 의한 추측(an educated guess), 직관적 판단(an intuitive judgment), 정형화한 생각(stereotyping), 상식(common sense), 시행착오(trial and error) 등의 방법으로 단순하고 즉흥적인 추론을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림짐작’이라 할 수 있다.
휴리스틱은 시간을 줄여주고 복잡한 것을 단순화해 주며, 때로는 직관적으로 한 판단이나 결정이 훌륭한 해답이 되기도 하므로 종종 관리자의 ‘리더십’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사실 휴리스틱은 객관적 사실이 존재하는데도 경험이나 감(感), 혹은 고정관념 등을 통해 내리는 불완전하고 비합리적인 판단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3차 산업혁명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빅데이터 시대가 되어, 지금의 세상은 한 명 한 명이 직접적인 경험으로 알 수 있을 만큼 단순하거나 예측할 수 있지 않으며 데이터의 양이 너무나 방대해 분석은 고사하고 읽기도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자연스레 알고리즘 algorithm에 의한 의사결정이 주목받게 된다. 알고리즘이란 휴리스틱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어떤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절차나 규칙, 방법의 집합을 말한다. 주로 대량의 데이터를 일정한 연산과 규칙에 따라 컴퓨터가 최적의 답을 찾는 것을 의미하며, 숫자를 순서대로 나열하는 정렬 sorting 알고리즘에서 인공지능 AI을 위한 기계학습 machine learning 알고리즘까지 다양한 알고리즘이 있다.
그리고 이제 알고리즘을 통한 방대한 데이터의 처리 기술은 인간의 노동뿐만 아니라 인간의 합리적이고 창의적인 의사결정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 과학적 분석과 솔루션의 자동화는 급기야 정치적 의사결정을 대신할 AI 로봇 대통령 ‘로바마 ROBAMA’의 등장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면 이제 인간의 의사결정은 필요 없어진 것인가?
재즈의 즉흥연주처럼 의사결정하라
더 나은 혹은 더 높은 성과를 위해 혁신을 시작할 때면 으레 조직개편부터 한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투입해야 하고 그것은 ‘적재적소에 적합한 병력을 배치하는 것’처럼, 조직구조를 더 효과적으로 만들면 될 것이라 믿는 일종의 ‘신화’에 기인한다. 그러나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조직의 구조나 프로세스나 방법론의 변화가 성과를 담보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실제로 세계 굴지의 컨설팅사 베인 Bain & Company은 다수의 조직 재편 사례를 연구한 결과, 기업 구조는 ‘의사결정 수립 및 실행 속도와 효과를 높여줄 때에만 성과 개선에 도움’이 되며 대부분의 조직 재편이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의사결정에 우선순위를 두고 이와 일치하는 조직을 구축해야 조직의 성과와 효율성이 개선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예측 불가하고 빠르고 개방적이고 자율적인 조직 환경에서 우리는 어떤 의사결정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재즈의 즉흥연주에서 힌트를 얻어보자. 재즈 연주에서는 ‘즉흥연주’가 종종 있다. 즉흥연주는 코드의 진행에 맞게 즉석에서 다양한 멜로디와 리듬으로 연주를 하는 것으로, 악기의 즉흥연주는 임프로비제이션 improvisation, 보컬의 즉흥연주는 스캣 scat이라고 한다. 즉흥연주는 말 그대로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것이므로 평소 탄탄한 연습이 기반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분위기를 읽는 감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마치 휴리스틱과 알고리즘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연주자끼리의 즉흥연주인 트레이트 trade라는 것도 있다. 음악으로 대화하듯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홀로 즉흥연주를 할 때와는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공감으로 소통을 하는 것이 그것이다. 소위 선수들끼리 모여 연주를 하는데 서로 실력을 뽐내려 하면 연주가 될 리 없다. 조직의 개념이나 구조는 계속 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즉흥연주처럼 의사결정한다면 관료제의 불통과 휴리스틱의 편견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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